@seungmi9814: 오늘 아침부터 비가 와. 쏟아지는 비 말고, 하루 종일 조용히 내리는 가을비. 두보가 그랬잖아. 좋은 비는 때를 알고,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신다고. 潤物細無聲. 그 시는 봄비를 노래한 건데, 나는 오히려 가을비가 더 그 말에 어울리는 것 같아. 투명한 우산을 쓰고 나왔어. 비를 막으면서도 하늘은 가리지 않는 우산. 우산 위에 맺힌 빗방울을 올려다보는데, 헤라클레이토스 생각이 나더라.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던 사람. 지금 내 우산에 떨어진 이 빗방울도 다시는 똑같이 오지 않겠지. 그러니까 이 순간은 딱 한 번뿐인 거야. 길이 다 젖어서 불빛이 바닥에 번져 있어. 나뭇잎은 노랗게 물들어서 하나둘 내려앉고. 흐린 날인데도 이상하게 따뜻해. 우리 미학에서 말하는 여백이 이런 걸까 싶었어. 다 채우지 않아도, 다 밝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거. 솔직히 예전엔 비 오는 날 싫었어. 신발 젖고, 옷 무겁고, 마음까지 눅눅해지는 것 같아서. 근데 니체가 그랬잖아. 아모르 파티, 네 운명을 사랑하라고. 맑은 날만 골라서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는 거지. 비 오는 날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진짜 삶을 긍정하는 거고. 젖는다는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더라. 하이데거는 ‘내맡김’이라는 말을 했어. 억지로 붙잡거나 밀어내지 않고, 있는 그대로 두는 태도.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두고, 나는 그 안에서 나답게 서 있는 거. 좋아하는 옷 입고, 구두 신고, 선글라스 너머로 살짝 웃으면서. 누가 봐주지 않아도 괜찮아. 나를 위한 거니까. 가을비는 뭔가를 씻어가고 또 뭔가를 남겨. 여름의 열기는 씻어가고, 그 자리에 사유할 시간을 남기지. 릴케가 가을날을 노래하면서 여름이 참 위대했다고 했던 것처럼, 지나간 계절을 아쉬워하기보다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.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. 요란하지 않게, 그렇지만 분명하게. 이 비 그치면 공기는 더 맑아지고 하늘은 한 뼘쯤 높아지겠지.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, 이 비 속을 천천히 걸어볼래.

코카와콜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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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uesday 13 October 2026 00:20:47 GMT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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nomjuj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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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6-10-13 04:20:3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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